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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02

무반댁

20060217/무반댁

무반댁에서의 마지막날. 이곳으로 와서부터는 단 한글자도 쓰지 않았다. 이곳에서의 짧은 일정은 특별한 프로젝트나 이벤트 없이 지나버렸다. 게다가 짧은 것이 다행이라 느껴질 만큼의 어떠한 불편함(?)같은 것을 느끼고 있다. 그것이 의사소통이나 어떠한 관점의 문제에서 불거져 나오는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기로 한다. 그저 이 불편한 느낌, 하루하루를 소진시키는 느낌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고 있는 중이다. 사실 대안 교육이나 아이들의 행복과 정서에 관해 충분하게 생각해 본 적은 지금껏 없었던것 같다. 뭐 이런 막연한 느낌탓에 그에 대해 몰두해서 생각해 봐야만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도 느끼진 않으려 한다. 그러나 또다시 새로운 경험과 새로운 느낌, 새로운 자극이 나의 내부에 분명하게 자리를 잡은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서른이 넘어서도 그랬듯이, 마흔이 넘어서도, 쉰이 넘어서도, 그 이후에도 끝도 없는 자극들이 끊이지 않을 것이 분명하리라. 그렇게 생각하자니 성장이란 과연 어디쯤에서 끝이 날 것인가, 문득, 두려움마저 밀려온다.













푸딘댕-위앙짠-방콕-무반댁(깐짜나부리)

20060213/푸딘댕_위앙짠_방콕_무반댁(깐짜나부리)


어 제의 이별파티에도 불구하고, 아침부터 동네아이들이 농장으로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우리가 떠나는것을 배웅하기 위해서였다. 더군다나 오늘 따라 학교 선생님들의 회의가 있다고 해서 오후 수업만 한다고 하니, 오전에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는 아이들이 찾아와 군데 군데 모여서서 아이들을 기다린다. 우리 아이들은 짐을 싸다 말고, 자신들을 배웅하기 위해 와준 친구들에게 인사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 우리를 공항까지 실어갈 벤이 이미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는데도 아이들은 눈물을 하염없이 쏟아내며 이별인사를 한다.


















아 이들을 진정시키고, 짐을 챙기게하고, 차에 올라타게 하는데에만도 몇십분이 흘렀다. 차에 올라타서도 눈이 벌게지도록 울어대느라 그렇게 한시도 쉬지않고 시끄럽게 떠들어 대던 아이들의 입이 닫혀버렸다. 우리는 무반댁에서 다시 새롭게 만나야 할 아이들이 있으니 그 슬픈 감정은 조금 미루어 두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아이들에게 조언한다. 차안에서 조용히 음악이 흘러나오고, 창문밖으로 흘러가는 푸딩댕, 라오스의 풍경들이 눈동자를 떠나간다. 흙먼지가 날리고, 여전히 비닐봉지가 흩날리는 도로변의 풍경은 이곳에 도착한 첫날에 본 풍경과 똑같은 것임에도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이 풍경들을 놓칠새라 나는 눈을 깜빡이는 것조차 아까운 마음이 되어버렸다.

네 시간 가량을 지나 위앙짠 공항에 도착했다. 이제 방콕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 방콕에서 무반덱까지의 여정이 남아있다. 작은 라오스 공항을 통과해 작은 경비행기에 올라타 작고 귀여운 기내식을 받아들고 이 작은 나라에 대해 생각한다. 아무것도 가진것이 없는 땅. 기차가 없고 학교가 없고 병원이 없고 돈이 없는 땅. 그러나 아름다운 자연이 있고, 아름다운 사람과 마음이 있는 땅. 제국주의자나 인종주의자가 될 수도 없지만, 낭만주의자는 더더욱 될 수 없는 이 땅위에서, 나는 적어도 작은 감동과 기쁨을 분명히 확인하고 왔음을.






ps. 방콕 공항 도착. 무반댁으로 이동. 이동중 맛있었던 태국식 저녁식사



푸딘댕11

20060212/푸딘댕

바시(Basi, 동남 아시아 지역에서 행하는 이별행사. 떠나는 사람의 손목에 하얀 실을 묶어준다.)준비도 해야하고, 못다한 유쓰센터 지붕그림도 마무리 짓고, 히옥스가 오기도 해야하는데 아침부터 비가 주룩주룩 내리기 시작했다. 우기가 아니어도 2월부터는 간혹 비가 올 수도 있다 하는데, 하필이면 마을 아이들을 바시행사에 초대한 오늘 비가오다니 조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바 시행사에서 보여줄 공연등을 준비하느라 아침부터 분주했다. 날이 맑지 않으니 비를 피해 여자 아이들 숙소에 모여서 보여줄 것들을 의논하고, 연습하고 머리를 짜내고 하는 일을 진행했다. 일단은 이별의 인사를 '슬램'으로 하는 것으로 정하고 가사를 쓰고 연습을 하고 음악을 고르고 음향을 준비하는 등 재빠르게 일을 진행 시켰다. 모두 인사를 전하는 슬램, 영어 2반에서 준비한 연극'별주부전' 예문이과와 노른자가 준비한 춤, 흰자와 프린이 준비한 노래, 올리브와 고기가 진행하는 율동 등으로 짜여진 공연으로 대강의 포맷을 잡아갔다. 각자 연습을 하기로 하고, 스텝들은 음향을 준비하고 일정 정리를 하는등 또다시 분주한 반나절이 지나고 조금씩 비가 멎기 시작할때 즈음 나는 훼이와 함께 페인트 통을 들고 달려나가 지붕 그림을 마무리 하기로 했다. 거의 마무리가 되어가는데 또다시 빗방울이 굵어지기 시작한다. 정신없이 끝을 내고 비를 맞으며 페인트통을 옮기고 하느라 생각한만큼 말끔한 뒷마무리가 되지않아 주욱 마음에 걸린다.













오 후 늦게 히옥스가 도착했다. 바시행사 준비가 여기 저기서 한창이고, 날이 어둑해지자 바시를 주관하실 마을의 어른도 도착하고 우리가 초대한 마을 아이들도 하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바시의식은 생각했던것 보다 더 인상깊은 행사였다. 진지함과 유머가 오가고, 사람들의 따뜻함과 웃음이 우리의 공간을 가득 메워가고 있었다. 바시의식이 끝나고, 농장의 일꾼 아저씨의 '켄' 연주를 듣고, 켄 연주에 맞춘 동네 꼬마의 노래를 들었다. 연극공연과 우리 아이들이 준비한 공연이 진행되고, 마을사람들은 탄성과 박수로 화답해 주었다. '행복한 이별'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들 썩거리던 이별파티가 끝나고, 감동에 흥분되던 마음을 가라앉히고 숙소로 들어서는데 훼이가 큰소리로 부른다. 무슨일인가 싶어 훼이의 숙소에 들어가니, 고양이 한마리가 새끼들을 침대위에 내려놓고 도망쳐버렸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새끼고양이들을 거두느라 어찌할바를 모르다간 잠시 생각한다. 참으로 경탄하지 않을 수 없는 밤이구나. 하고.

푸딘댕10

20060205/푸딘댕


이 곳에서 두주가 성큼 지나가 버렸다. 이제 한주만을 남겨놓고 있다. 오늘 하루, 데이트립을 계획에 잡아 두었지만 그리 땡기진 않는다. 아침 8시 30분에 모여 떠나기로 했는데 6시 30분에 절로 눈이 떠지고 말았다. 담배도 술도 나이트 라이프도 없이 하루하루를 촘촘히 보내고, 잠들기전엔 모범적이게도 책을 읽고 새벽같이 눈을 뜬다. 이런 생활에 적응이 가능하다는 것이 나에게 있어서는 엄청나게 새로운 발견-_-.



caving과 kayaking등으로 이루어진 오늘의 데이트립은 제법 재미있었다. 몸도 태우고, 움직이고, 많이 웃고 떠들었다. 그야말로 절경이라 부를만한 자연의 숭고함에 무감해 질 지경으로 모든 풍경들을 부지런히 눈에 담아내려 노력했다. 강물에 몸을 맡기고 오로지 하늘만을 바라보는 기분은 최고였다. 우엇이 하늘이고, 바람이고, 물이고, 공기이고, 또 나인지 모든 물질들의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 탄성과 경외로 가득한 순간이 계속 남아있다면, 그것은 여전이 자연이 주는 선물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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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04/푸딘댕

모 처럼 일정이 느슨한 토요일이다. 아침식사후 마을 아이들과 into the village의 활동으로 tubeing족에 관한 토론을 시작했다. (정확히는 '튜빙을 하는 파렁'. 파렁이란 외국인을 말한다.) 토론은 튜빙족들이 옷을 벗는 행위를 이야기하며 시끌벅적해졌다. 통디가 말하길 그들이 옷을 벗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왜 그런가에대해 질문을 던졌다. 통디는 그들의 행위가 자신들의 일상과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자신들도 강에서 목욕을 하기위해 옷을 벗곤 한다, 그러나 여흥을 즐기기위해 튜브를 타러와서 옷을 벗는 행위는 낯설다고 한다. 이전에 흰자는 이것을 문화적 차이정도로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 문제가 과연 문화적 차이, 혹은 취향과 삶의 문제로 놓아둘 이야기일까. 통디의 말에 강한 거부감이 느껴지지는 않았으나 이 마을의 사람들은 분명히 튜빙족들을 불편해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들의 일상에 끼어들기 시작한 외국인 관광객들. 개발과 발전의 논리가 이들을 승낙하는 한편, 그들의 일상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함께 공존하고 있는것일까? 어쩌면 이 '파렁'들은 마을사람들의 삶을 침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서구인 관광객, 돈을 쓰고 가는 존재, 혹은 기이한 삶을 사는 존재, 놀기위해 옷을 벗는 존재, 개발된 나라에서 온 1등시민, 혹은 힘을 가진 존재- 수많은 레이어를 가진 존재들이 이 단조로운 삶의 영토에 끼어들고 있다. 그러나 마을사람들에게 이 외국인 관광객들이 보다 나은 삶을 선사해 줄지도 모르는 이들이라는 막연한 기대들이 생겨나고 있다면, 이들은 또한 경이로운 존재이며 동경의 대상일 터이다.




단 순한 논리로 이끌어낸 결론 따위는 생기지 않는다. 현재의 삶은 이미 과거에 이들이 누려왔던 것의 몇백배 이상이나 복잡해져 버렸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식별해 낼 수도, 무엇이 냉소이고 그렇지 않은지, 혹은 무엇이 존중되어야할 것이고 그렇지 않은지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 또한 저 모호한 경계위에 남겨져 있다. 그러나 무엇인가 놓쳐서는 안될 것이 있기때문에, 무엇인가 끊임없이 반복해서 설명해 내고 기억해 내어야 할 것들이 분명히 존재함을 믿기 때문에, 우리는 삶을 지속시키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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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02/푸딘댕

스쿨버스 당번인 날이라 서둘러 일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너무 과했던지, 새벽 5시부터 일어났다 누웠다를 반복하다가 결국 부스스하게 피곤한 아침을 맞았다. 오늘도 역시 버스의 시동은 제대로 걸리지 않고, 몇번을 힘겹게 밀고 당기고를 한 후에야 간신히 차를 출발시킬 수 있었다. 버스에 타는 아이들이 기사아저씨와 다오, 나와 고기의 순서로 빠짐없이 인사를 해대는 통에 사진기를 들이대는것이 무안해졌다. 게다가 어찌나 이쁘게들 손을 모으고 다리를 모아 인사를 하는지들. 너무 웃어서 얼굴에 경련이 일 지경.-_-












모 두를 고려하는 일은 힘겹다. 모두를 보살피는 일 역시 그러하고, 모두를 드러나게 하거나 모두를 잠잠하게 하는일 역시 그러하다. 멤버중 하나가 알수없는 신경질적인 표출을 시작했다. 그 근원이 무엇이고, 그 특별함은 또 무엇인지 알 수가 없지만 이상한 기류가 계속된다. 이것은 보듬어 주어야 할 성질의 것인지, 혹은 계속 맞받아 쳐야 할 성질의 것인지 분별할 수가 없다. 어쩔 수 없이 지켜보기만 할뿐.


피곤한 하루다. 종일 멍하게 하루를 보낸것만 같다. 하루쯤은 빈둥거릴 수 있는 도시의 생활이 조금은 그리워진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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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01/푸딘댕

히옥스가 떠나고 약간의 긴장감이 흐른다. 아이들도 긴장하길 바라지만 불행히도 그나마 있던 긴장감마저 사라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여전히 들썩거린다. 이곳에 온지 삼사일째 되던날 즈음에 느껴지던 다소 나른한 하루는 이제 제법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생각을 할 시간도, 그림을 그릴 시간도, 책을 읽을 시간도 충분히 나질 않는다. 이래서야 서울의 생활과 별반 다를것이 없지 않나 싶어 은근히 짜증이 밀려오기도 한다. 그러나 순간순간이 소중한 경험들이라는 것을 어떻게 간과할 수 있을까. 순간의 감동, 순간의 실망, 순간의 갈등, 순간의 투쟁, 순간의 환호와 순간의 아찔함들이 늘, 여기에도, 거기에도 있다. 기억이 그것들을 잡아주길 바란다.





ps. 비엔티엔 인터네셔널 스쿨에서 study trip으로 농장 방문. 영어수업 참여. 애들이 때깔부터 다르다. 그러나 시시하다.

pps. 커튼작업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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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31/푸딘댕


오 전내내 도서관의 창에 내릴 커튼을 만드는 작업을 하느라 허리가 굽어버릴 지경이다. 마지막 마무리를 하는 와중이지만 행여 우리가 떠나고 난 뒤에도 여전히 남겨져 있을 이 장소에 흉이 될까 싶어 무척 신경이 쓰인다. 점심을 먹고나서는 아이들과 시장구경을 가기로 했다. 차로가면 10분도 안될 거리이지만 걸어서 가보기로 한다. 약 30여분이 걸릴것이고, 나는 그중 15분간의 침묵걷기를 강하게 제안했다. 생각보다 우리에게 주어진 과업이 아직 적어서 몸을 많이 쓰고 있지 않는 까닭에 걷기를 제안했고, 아이들이 지나치게 소란스러운 통에 잠시만이라도 침묵하는 인내를 체험해보자는 의도에서 였다. 무척 더운 날씨였지만 어렵지 않게 시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 런저런 물건들을 양손에 그득히 사들고 다시 농장으로 돌아와 쉬려는데 아저씨가 심각하게 나를 부른다. 무슨 일인가 싶어 달려가니, 누군가 쏭강에 차를 대고 세차를 하고 있었던것. 격노한 아저씨는 식당의 손님들에게 이 현장을 사진으로 남겨 여기저기에 알려줄 것을 부탁하신다. 쏭강은 이 마을의 젖줄과도 같다. 오래전부터 마을사람들은 이 강에서 식량과 물을 얻고, 목욕을하고 빨래를 하며 함께 살아왔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은 이 장소를 관광객들의 튜빙장소로 넘겨주고, 강의 주변에는 튜빙족들을 맞이하는 맥주집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약삭빠른 사람들은 강바닥을 포크레인으로 긁어 강의 흐름을 바뀌게 만들어, 관광객들이 더 '잘' 맥주집을 지나갈 수 있게 하고 있다. 아저씨와 농장의 가족들은 이 강에 미친 그러한 인위적인 행위들로 인해 언젠가는 자연의 복수를 받게 될것이라 믿고 있다.


1 월의 마지막 날이다. 서울에 있었다면 새해의 첫달이 사라져버리는 아쉬움에 한탄을 하고 있었으리라. 이곳에서도 새해의 첫달이 가버렸다는 것을 알았으나 그닥 아쉬움이 느껴지진 않는다. 아침이 오고, 밤이오고, 일을 하고, 밥을 먹는다. 가끔씩 책을 읽고, 생각을 하고, 주변을 둘러보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다. 티비도 없고, 라디오도 없고, 컴퓨터도 없지만 세상은 변하고, 사람들도 그 변화를 느끼고, 삶은 그 변화에 실려 흐른다. 마을의 삶을 뒤흔드는 이 기묘한 흐름들은 계속해서 잔류하며 슬금슬금 이곳의 기류를 뒤바꾼다. 나는 종종 먹먹해 진다. 이 참아내기 힘든 먹먹함은 어디에서 시작되는 걸까? 무엇하나 어느 곳에 남겨둘 수도, 어느 한 방향을 따라 흐르게 할 수도 없다. 무엇 하나 한곳을 향해 기울게 할 수도, 격렬할 수도, 또한 침묵할 수도 없다. 잠시간 빠져나올 수 있었던 서울에서의 지리멸렬한 일상은 다시 위치를 바꾸고 있다. 일상이 무엇인가를 묻는다면 나는 대답할 길을 찾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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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30/푸딘댕

다시 월요일. 이 곳에 온지 정확히 일주일이 지났다. 그와 동시에 올해의 첫달이 슬슬 뒤로 물러나고 있다. 지난 한주는 일주일간의 시험후 방학으로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는다고 했고, 오늘부터는 스쿨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서둘러 일어나 스쿨버스가 나가는 것을 배웅하러 나오니 이 중고차가 말썽이다. 밤새 떨어진 기온 때문에 차의 상태가 좋지 않아, 이 차를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달라부터 밀었다 땡겼다를 반복하고 이 반동을 이용해 시동을 걸어야한다는것. 농장에서 일하는 모든 인부들과 오늘의 스쿨버스 당번들이 달려들어 몇번을 밀고 당긴 후에야 겨우 시동이 거렸다. 차의 뒤꽁무니에서 털털거리며 가고 있는 그 모습을 보자니 피식 웃음이 다 난다.



이 마을에서 스쿨버스가 가지는 의미는 크다. 마을의 아이들이 살고 있는 곳과 학교는 상당히 거리가 있고, 아이들이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가다가 교통사고를 많이 당한다. 병원시설이 낙후되어있는 라오스에서 치료나 수술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고(수술을 받기위해선 태국으로 가야한다.) 아이들은 다친후 방치되어 장애를 가지게 되거나 심한경우 사망하기도 한다. 그런 이유들로 학교를 중도포기하는 경우도 왕왕 일어난다. 아반코리아(Asian Volunteer Action Network)에서 푸딘댕 마을과 연계해 진행하는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중 하나가 이 마을에 스쿨버스를 제공하고, 그것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마을의 이장들은 이러한 활동을 이해하려들지도 않고 귀찮아해 아이들을 이 버스에 태우지 않는다. 그래서 현재 이 버스를 이용하고 있는 아이들은 옆마을의 아이들이다.










스 쿨버스를 떠나보내고 잠시 마을을 산책하기로 한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모습도 보고 싶고 한가로운 아침의 풍경속을 호젓이 걷는 기분도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꽤 멀리쯤 걸어갔을때 등교시간의 막바지에 달한 아이들이 힘차게 자전거 패달을 밟으며 몰려들기 시작한다. 밝아오는 아침의 공기 사이로 하얀 와이셔츠를 다려입은 아이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오면서 거리는 학교로 향하는 학생들의 모습으로 가득한 장관을 이루었다. 이른아침. 새벽부터 일어나 고된 일을 하고나서야 교복을 갈아입고 학교에 갈 수 있는 아이들이지만 눈가엔 졸음조차 묻어있지 않다. 아침 공기에 아주 잘 어울리는 싱그럽고 밝은 얼굴들. 다오에게서 들었던 이나라 학교의 실상들과, 이 등교길의 아름다운 아이들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뒤얽혀 또 조금은 복잡한 마음이 되었지만, 이내 생각을 지워버리고 아이들에게 손을 길게 뻗어 흔들며 인사를 전했다.













아이들의 건강과 마을의 평화를 빌고 또 빌어본 아침.



p.s 다오, 용구와의 간담회.



푸딘댕4

20060129/푸딘댕

설날. 이자 일요일. 물론 이곳의 설은 아니다. 이곳은 태국과 같은 4월의 송깔을 설로 쇈다고 한다. 더운나라에 있다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어젯밤의 추위는 절로 몸을 움추리게 했다. 밤새 추위에 떨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그래도 감기에 들지 않고 무사한 아침을 맞았다.



Into the village 활동을 위해 아침부터 마을 아이들이 농장으로 모여들었다. 아이들이 정한 푸딘댕 마을을 구성하는 9가지의 키워드들 중 하나인 오가닉 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날이다. 이 농장을 구성하는 것들중 중요하거나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어떤 것을 사진으로 찍게 된다. 무엇이 기록되어야 하는지, 왜 그것이 의미있는지, 그리고 그것에 어떠한 관점을 담아야 할것인지를 이야기하며, 조금씩 마음을 터나간다.






우 리에겐 아무런 흥미거리 조차 되지 못할 소소한 것들. 네이버에 물어보거나, 책을 몇권 뒤적여보면 금새 찾아질 마을과 공동체에 관한 이야기들을 이 아이들은 직접 만들어 나가고 있다. 그것은 아이들 스스로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지역의 일상을 직시하고, 자신들의 역사를 써내려가는 일이기도 하다. 이 작은 진지함들이 고맙고 또 고맙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한 시간 여의 낮잠을 자고 일어나다. 수면시간외의 잠을 자본것이 이곳에 와서 처음이다. 피곤했거나, 혹은 이곳의 삶에 완전히 적응하였거나. 히옥스의 잠시간의 출국으로 저녁 식사후 긴 회의가 이루어졌다. 약간의 신경전이 펼쳐지다. 아직은 별탈없이 지내고 있지만 히옥스가 돌아간 이후가 슬금 걱정이 된다. 별일이야 있겠는가 맘을 편히 먹어보려 노력한다. 이럴땐 나의 이 대책없는 낙관주의가 조금은 힘이될지도 모른다. 결과적으로 일일 staff 제도를 도입. 아이들이 돌아가면서 하루씩 스테프의 역할을 해보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어느정도의 책임감과 짐이 느껴지는 역할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보이는 몇몇 아이들을 보면서 착잡하기도 하고, 실망스럽기도 했다. 좀더 함께 생각하고 토론하고 또 논쟁하는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하루하루 일정을 채워 나가는 것만으로도 왠지 부족한 느낌이 든다. 하루는 늘 길기도 하고, 짧기도 하다. 언제나 시간이 그렇게 아쉬움을 주고 사라져 버리므로.


p.s 설날기념으로 약간의 떡국과 그 유명한 라오 맥주 (Beer Lao)를 맛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