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803

동두천프로젝트를 마치며/ BOL009

2008/07
동두천 프로젝트를 마치며/정은영

지역연구에 베이스를 둔 미술프로젝트를 진행 한다는 것은 애초에 나에겐 큰 도전이었다. 거의 모든 시간을 방구석에 틀어박혀 오로지 스스로의 의지박약과의 지난한 싸움을 번번히 일삼으며 침묵속에서 작품들을 생산해 왔던 일천한 경험은 그리 내세울만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예술가”라기보다는 “활동가”로서 움직여야 할 것이 뻔한 이 프로젝트에서의 나의 자격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이러한 종류의 프로젝트를 진행/수행하는 대부분의 작가들에게 가장 큰 딜레마일 것이라 짐작해 마지않는 ‘개입’과 ‘침입’의 경계설정의 문제, 또한 예술가와 활동가라는 정체성을 내적으로 통합해야만 하는 과제, 더불어 ‘재현’이 곧 ‘대표’가 되어버리는 이데올로기적 음모를 어떻게 유유히 뚫고 새로운 언어들을 솟아나게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질문까지 이 모든 문제들이 한껏 내 어깨를 짓누르곤 했다.


리서치라는 명목으로 허구헌날 동두천을 드나들었지만 사실 외지인인 내가 어떻게 이 공간의 ‘지역성’과 그곳에서 삶을 영위하는 ‘지역민’이라는 울타리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이 모든 삶의 편편들에 가까이 다가가고 또 어떻게 확장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은 아직 얻지 못하였다. 답을 얻기는 커녕, 나의 작업이 한명의 ‘외지인’에 불과한 누군가의 부박한 관찰기가 되는 것 만은 막아야 한다는 무척 소심한 목표를 여전히 되새김질 하고 있을 뿐이다. 이미 이년여간의 프로젝트 진행과정을 마치고 세차례의 전시를 끝낸 지금에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부끄럽기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두천 프로젝트는 나에게 여전히 의미있고 중대한 사안들을 제시해왔다. 나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다시 한번 미시담론과 미시역사의 정치성을 확인하고, 근대적 기획과 선택적 기억들을 빗겨나면서 독자적으로 존재하며 사라져간 ‘비체’들을 애도하고 그들의 고통에 연대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동두천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무수한 도시들 중의 하나에 불과하지만, 그 어떤 지역보다도 ‘전지구적 질서’와 ‘국민국가적 가치’가 거세게 경합하는 동시에 공모하는 신자유주의의 은밀한 기획을 깊고 넓게 들여다 볼 수 있게 해주었다. 나는 이 도시의 풍경을 가로지르면서, 그리고 그 공간을 메꾸고 있는 삶의 공기를 나누어 마시면서, 역사와 기억, 국가와 국민, 경제와 자본 그리고 젠더와 계급에 대해 맞닥뜨린 예민한 문제의식들을 결코 놓치지 않으려 애써왔다.


한편, 나는 동두천의 지역민들에게 어떠한 ‘친밀함’으로 다가가는 것을 부득불 지양했었다는 것을 고백하고 싶다. 밀착적인 관계맺기와 부단한 대화(거의 대부분은 인터뷰가 될)의 시도를 통해 가능한 많은 양의 정보를 수집하면서 지역민을 ‘정보원’으로 혼동하고 싶지 않기도 하거니와, 얼마간의 ‘외지인’의 윤리가 있어야 한다는 판단에서이기도 했다. 지나칠 정도의 신중함과 자기검열이 프로젝트의 ‘소극성’을 변명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고민에 빠지게 만들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업주들과 사이좋게 담소를 나누며 볕좋은 마당에 둘러앉아 고추를 닦는 클럽의 여자들에게, 오전의 상쾌한 강바람을 맞으며 미군의 팔짱을 끼고 신천변을 거닐며 사랑을 속삭이는 그녀들과 유모차 안의 우는 아이를 달래가며 진지하게 자신들의 미사를 신께 바치는 그녀들에게, 지역에 피해가 갈세라 카메라를 둘러메고있는 나를 불러세워 다짜고짜 소리치는 업주들이나, 수상한(?) 외지인의 출현을 감시하는 동네 사람들에게 어떻게 심각한 얼굴로 사진기나 녹음기를 들이대며, 나의 예술적 열정을 앞세워 그들의 일상을 훼손할 수 있단 말인가. 그저 쑥스러운 웃음을 띄며 조심스러운 인사를 건넬 수 밖에. 물론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그들에겐 거슬리는 존재였을 것이 분명하지만 말이다.


실은 수차례의 “접촉”과 “관계”에의 실수와 실패들을 경험하면서 나는 지역으로 깊숙히 밀고 들어가기보다는 외지인으로서 위치할 수 있는 아주 경계적인 자리에 나를 세워두었다. 그곳에서는 모두의 확고한 목소리를 들을 수는 없었지만, 아주 작고 사소한 풍경들과 그 풍경을 만들어내는 삶의 구조들이 서서히 선명해졌다. 나는 그것들을 보다 정치精緻/政治하게 드러내는 것으로 동두천과 그곳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작가들에게 부여된 일은, 거시적 역사와 그 풍경을 스펙타클하게 재현해 내거나 “동두천”이라는 국민국가의 트라우마를 폭로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외상을 희생자주의와 민족주의로 상쇄하려는 집단적 치유의 전략을 “거절”해야만 하는 또다른 예술적 전략의 생산이었을 것이다.


이년 가까이 매달려 있던 동두천 프로젝트는 그 과정의 치열함과 내적 투쟁을 뒤로하고, 이제는 단정한 갤러리 안에 얼음처럼 갇혀있다. 갤러리 전시에 회의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화이트 큐브에 대한 지난한 싸움과 분석과 수정과 협상들은 내가 한마디를 더 보탠다고 마침표가 찍힐리는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이제 많이 '말하고 쓰는'것에 흥미를 가지지 못한다. 다만 지난 시간동안 그 다채로운 순간순간의 사건 혹은 감정과, 이렇게 다양한 레이어의 의미와 사회적 관계들을 모두 다 설명하겠다고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뿐이다. 가슴속이 묵직해 지는 것 만큼 현상과 물질로 내려앉은 것들에 대해 약간의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숨길 수가 없다. 그러나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뒤로 하고 현재의 결과물들이 어떠한 연속성을 가져올 수 있는지를 고민하며 또다른 실천의 방식들을 모색하려 한다.


물심양면으로 큰 힘이 되어주셨던 동두천 시민연대와 활동가 분들과 동두천에서 만나고 지나쳤던 주민분들께, 나의 ‘작가적’이기심과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늘 날카로운 조언과 힘있는 격려를 보내주었던 김희진 큐레이터에게, 매 순간 순간 자극제가 되어주었고 콜렉티브의 힘을 알게 해준 동료 작가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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