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803

The Narrow Sorrow: 삶에의 경의, 죽음에의 애도/2009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출판물 (양혜규: Condensation)

The Narrow Sorrow: 삶에의 경의, 죽음에의 애도
정은영 siren eun young jung



누가 인간으로 간주되는가, 누구의 삶이 삶으로 간주되는가…무엇이 애도할 만한 삶으로 중요한가. 1

동두천2 을 배회하던 유난히 뜨겁던 어느 여름의 한 낮, 나는 “누구의 삶이 삶이며, 어떤 삶이 애도할만큼 중요한 삶인가”라는 버틀러의 질문을 떠올리고 있었다. 원주민을 밀어내고 거대하게 담장을 친, 미군 기지를 중심으로 조성된 남한의 이 작은 ‘군사 도시’의 시가지를 배회하며 마주치는 얼굴들은, 주로 이주민이라 호명되는 다양한 인종들이다. 거리를 활보하는 이국의 여자들은 아기를 눕힌 유모차를 밀고 나와 삼삼오오 한 낮의 수다를 즐기는 중이고, 골목골목마다 이국의 언어가 자연스레 들려온다. 미군들의 나잇 라이프와 여흥을 돕는 클럽의 수 만큼, 이국에서 온 여자들의 수가 넘쳐나고, 이국 음식점과 식재료를 파는 상점들 또한 넘쳐난다. 오래 전, 클럽에서 일하던 여자들의 시체를 흘려보내던 신천3은 이제 그 주변을 시민공원으로 단장하고 미군과 클럽여성의 낭만적 데이트를 위한 장소를 제공한다. 반짝이는 수면과 녹음이 어우러진 여름의 냇가는 여자들의 시체를 흘려보내야만 했던 비정의 역사를 더 이상 상기시키지는 않는다.




캠프케이시Camp Casey 4 근처의 보산동 클럽가는 형형색색의 촌스럽고 요란한 건물 외관과 간판들이 무색하게도 너무나 적막하여 어떤 숭고함 마저 느끼게 한다. 가끔, 낯선 인물인 나의 등장이 이 골목에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에게 불편할 수 있다는 것을 눈치채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나를 발견한 사람들의 몇몇 질문과 공연한 시비가 간간히 이 골목의 적막을 깬다. 그들은 아주 옛날, 그들의 조상들이 그랬던 것 처럼 농사를 짓지 않는다. 그들은 거의 미군을 위한 서비스업에 종사하며 삶을 살아간다. 나는 본의 아니게 그들의 삶의 공간에 침범한 침입자가 되고 만다. 밀려드는 죄책감을 애써 숨기며 능청스레 그들을 상대한다. 그리고 최대한 예의를 갖추어 묻는다. “이 지역이 곧 개발된다고 해서 보러 왔는데, 언제 된다던가요?” “그런 소리 마, 내가 여기서 몇십년째를 사는데, 그런 일은 없을 것 같소.” “미군도 곧 빠진다던데요?” “ 허이구, 그 소리를 벌써 십수년째 듣는데.. 아니야.” 전국 곳곳의 개발지역이 신자유주의자들의 자본우선 논리로 모든 것을 밀어내고 개발 ‘병’을 앓고 있는 반면, 이곳의 개발은 미군의 전세계적인 군사 재배치 ‘이후’의 문제가 될 것이다.



군부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물론 금지되어 있다. 일반인에게 오픈한다고 알려진 날 소정의 절차를 밟았으나, 그들은 한순간에 말을 바꿔 동두천 지역 외 거주민의 견학을 허락하지 않았었다. 군인들이 드나드는 입구의 근처까지 바짝 다가가 문 너머를 기웃거린다. 사실 무엇이 저 문 너머에 펼쳐지는가를 궁금해 하는 것은 아니다. 공주봉 에 올라서서 바라봤던 캠프 케이시의 전경은 그야말로 하나의 이상적인 근대 도시와도 같았다. 합리적으로 구획된 블럭들과 잘 닦여진 도로, 적절하게 어우러진 녹지가 안정감을 자아내던 것을 기억한다. 최근 캠프 케이시 주변의 골목들은 도시가스 공사가 한창인데, 담장을 사이에 두고 부대 안쪽과 바깥쪽의 편의시설이 이렇게 차이가 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비현실 적으로 느껴진다. 담장을 따라 걸으며 생각에 잠기다가 다시 골목을 배회한다. 건물의 배치와 구조들이 일반적인 도시의 풍경을 연상시키지는 않는다. 공간의 모습은 늘 그곳에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의 삶의 양식을 그대로 현현한다. 경계의 삶, 틈새의 삶, 등록되지 않은 삶, 뿌리내리지 않는 삶. 그 삶이 현전하는 장소들은 번지없이 잘게 나뉘어 정주민들이 버려둔, 잉여로 남겨둔 공간을 메운다.




상패동의 무연고 공동묘지5는 6-70년대 남한의 근대적 욕망의 군사화와 그 트라우마를 고스란히 안고있는 ‘유령’들의 장소다. 최초의 반환 기지인 캠프님블Camp Nimble 6을 끼고 도로변을 한참 걷다보면 울룩불룩 묘지들의 형체가 어렴풋이 드러나는 작은 동산이 보인다. 한 여름의 잡초들은 무섭도록 빠르게 자라나는 탓에 묘지로 올라가는 길은 막혀 있었다. 여러차례 기어오르기를 시도했지만 나지막한 동산인데도 올라설 수 없을 정도로 무성하게 뒤덮혀 버린 것이다. 얼핏 잡초들 사이로 보이는 검은 말뚝들이 번호를 달고 있을 뿐, 이 곳에 묻힌 이들에 대한 어떤 정보도 찾아 낼 수 없다. 어떤이들의 죽음은 너무 빠르게 잊혀지고, 한여름의 잡초는 너무 빠르게 자란다. 묘소에 오르기를 포기하고 내려오면서 동산 초입의 작은 냇가를 새삼 발견한다. 본래 물이 흐르는 곳에 묫자리를 쓰지 않는다는 풍수지리의 전통적 지혜를 무시한 채 물길이 이 작은 동산을 따라 흐르고 있는 것이다. 냇물이 흐르는 소리가 오히려 어떤 ‘언어’처럼 느껴질 지경이다. 물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잠시 그들을 위해 묵념한다.



어둠이 내려 앉으면 보산동의 클럽가는 한낮의 침묵을 잊고 떠들썩해 진다. 번쩍이는 네온과 소란스러운 음악, 여자들의 웃음소리, 남자들의 허세와 고함이 여름공기의 습한 기운을 타고, 이국음식들의 향기와 술냄새, 그리고 ‘어떤’ 비 가시성들이 뒤섞여 흐른다. 미군들, 카투사들, 상점주들, 클럽주들, 마마상들, 클럽의 여자들, 상점의 점원들, 배회하는 거리의 구경꾼들과 보행자들. 다채롭기 이를데 없는 인종, 젠더, 권력, 국적, 직업, 정체성의 혼란한 뒤섞임들 속에서 나는 철저하게 이방인으로 위치지어 짐에도, 이들의 삶에 강한 연대감을 느끼고 있다. 낮에 들렀던 필리핀 이주여성들을 위한 작은 공동체 미사에서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타갈로어의 신성한 음성들이 이 거리의 떠들썩한 소음과 조화를 이루어 내는 것을 상상한다. 성스러운 종교적 언어들이 이곳의 저열하고 취약하며 세속적인 언어들과 리듬의 조각을 하나씩 맞추어 가는 것을 상상하는 것이다. 이 ‘벌거벗은 삶’ 의 내부를 채워나가는 동시에, 우리의 눈앞에 펼쳐진 삶의 장소들을 촘촘히 메우고 있는 숨쉬는 언어들이 지금 이 기이한 여름밤의 공기들처럼 엄연히 우리에게 감지된다.



twinkle, twinkle

우리는
반짝거리는 것들에
온통
마음을 빼앗겨 버리고 만다네.

반짝이는 네온과 간판,
반짝이는 여자들의 드레스와 장신구,
반짝이는 조명이 돌아가는 반짝이는 무대,
반짝이는 유리잔을 든 반짝거리는 손톱,
반짝이는 아이섀도우 아래의 반짝거리는 검은 눈동자,
반짝이는 뾰족한 하이힐이 반짝이는 바닥위를 톡톡 구르는,
반짝거리는 것들로 가득한 그 도시에선
여자들의 웃음소리마저 반짝이는 보석처럼 아름다웠지.

반짝, 반짝, 반짝,
반짝이는 것들을 사랑하는
우리는
그 빛나는 아름다움을 쫓아
그 곳으로 갔다네.

모든 것이 시시해지는 어두운 밤에도
그 도시는 더욱더 아름답게 반짝거렸으며
여자들의 웃음소리는 밤하늘의 별보다도 아름다웠지.

We are
Completely
Entranced by
Twinkling things.

Twinkling neon lights and signs,
Twinkling ladies’ dresses and accessories,
Twinkling stage where twinkling lights twirl around endlessly,
Twinkling fingernails holing a twinkling glass,
Twinkling black eyes underneath the twinkling eye shadow,
Twinkling pointed high heels tapping buoyantly on the twinkling floor,
In that city brimming with twinkling things,
Even the ladies’ laughter was enticing like twinkling gems.

Twinkle, twinkle, twinkle,
All of us,
Who loved twinkling things,
Went there,
Chasing after that glittering beauty.

Even during nights when everything becomes dull
That city twinkled more and more
And the ladies’ laughter was more beautiful than the stars of the night sky.



누가 인간으로 간주되는가? 누구의 삶이 삶으로 간주되는가? 무엇이 애도할 만한 삶이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가? 나는 이 거리를 빠져나오며 다시금 질문을 반복한다.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살아있으면서도 죽은, 버틀러 식으로 말하자면 ‘구성적 외부’인, 아감벤식으로 말하자면 ‘호모사케르Homo Sacer’인 이들의 삶과 죽음은 어떻게 애도받을 수 있을까? 나는 페미니스트 예술가로서, 다시 한번 주권의 밖에 있는 비체적 개인들의 정치성을 재현하리라 마음먹는다. 이 도시의 역사와 그 풍경을 가로지르면서, 그리고 그 공간을 메꾸고 있는 삶의 공기를 나누어 마시면서 삶에 대한 경의와 죽음에 대한 애도를 표해야 함을 강하게 받아들인다. 삶과 죽음이 위계화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늘 목격하고 경험하면서도, 우리는 누구나 평등하게 삶을 상실할 것이라는 사실을 또한 알고 있다. 언젠가는 나 스스로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웃이, 또는 한번도 본적이 없는 사람들이 사라질 것이라는 이해가, 우리에게 어떤 ‘공공의 영역’, 혹은 ‘공동체’의 가능성 7 을 이 도시안으로 불러들인다.



The Narrow Sorrow

건물과 건물, 혹은 클럽과 클럽 사이에 존재하는 기이하게도 '좁은' 문 뒤편에는 여자들의 방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다 . 이 문의 폭은 너무나 좁아서, 실상 사람이 통과 할 수 있는 문이라 상상하기는 힘들다. 공공의 기억 Public Memory 은 바로 이 같은 비좁은 공간들을 삭제하고, 이곳을 채우고 있는 여자들의 몸 또한 삭제해내면서 선택적 기억의 서사를 만들어 간다. 여자들은 존재하나 존재할 수 없으며, 살아있는 육신으로 현현되나 생존하는 자로 등록되지 않는다. 이들의 말은 쉴새 없이 들려오지만 기입되지 않고 , 수행 Perform은 지속되지만 축적되지 않는다. 이 호모사커 Homo Sacer 들은 좁은 문 뒤편에 몸을 감추고 침묵한다. 무거운 침묵이 이 고요한 대낮의 풍경 속에서 슬픔을 불러낸다 . 삶은, 생존은 어디에 있는 것인지를 물어보지만 아무런 응답도 돌아오지 않는다. 이제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천박한 네온들로 휘황찬란한 밤의 거리가 이 침묵과 슬픔을 잠시간 밀어낼 것이다. 소란함 , 유흥, 쾌락, 비천함과 광기로 뒤범벅된 공간이 밤의 시간을 점령할 때, 여자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장 화려한 옷을 입고 요란한 말들을 지껄이며 거리로 밀려나와 이 떠들썩한 공간을 또한 점령할 것이다. 이토록 소란하기 짝이 없는 여자들의 목소리가 뒤엉키고, 알아들을 수 없는 소음 덩어리들이 증식을 시작하면, 슬픔은 제 부피를 한껏 줄이고 줄여 비좁은 문의 뒤편으로 사라질 지도 모를 일이다 .

Behind peculiarly narrow gates situated between club buildings, there lies a path leading to even smaller doors of the club workers' shabby lodgings. The width of the gates is so narrow that it's difficult to imagine a person can actually pass through them. Public memory is constructed from a selective narrative of memory, deleting narrow spaces like these and erasing women's bodies that fill these spaces. These women do exist, but they cannot exist; they live as beings with physical presence, but they're not registered as live beings. Their words are heard incessantly, but they're not recorded. Their performances continue but aren't accounted for. They are Homo Sacer who remain silent with their bodies hidden behind the narrow gates. The heavy silence calls forth sorrow from the quiet midday landscape. It questions where life is and what survival means, with no answers returned. After a few hours, glittering night streets with vulgar neon signs will drive out their silence and sorrow, but only for a while. When a site mingled with bustling activity, entertainment, desire, cheapness and madness occupy the night, women dressed up in their most extravagant clothes, chattering in different languages, come out to the streets and proclaim this noisy site as their own. As the women's clamorous voices blend together and the incomprehensible mass of noises increases, the sorrow recedes as much as it can, to possibly vanish again behind the narrow gates.


1. 주디스 버틀러, 불확실한 삶, 양효실 옮김, 경성대학교 출판부, 2008, 46p
2. 남한의 경기도 최북단에 있는 면적 95.66 ㎢, 인구 90,000여명의 도시로, 북동쪽으로 포천시, 서쪽과 남쪽으로 양주시, 북서쪽은 연천군에 접한다. 군사보호구역에 속하며, 6·25전쟁 이후 급격히 발전한 기지촌(基地村)이다. (네이버 백과사전 참조 http://100.naver.com)
3. 경기도 양주시, 동두천시, 포천시, 연천군, 파주시 5개 시·군을 가로지르는 지방2급 하천으로 ‘한탄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지천이다. ‘한탄강’은 본래 은하수 모양의 아름답고 큰 물길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나, 한국 전쟁 이후 한탄강을 따라 남북 분단이 이루어졌고, 남, 북의 큰 접전이 한탄강에서 자주 일어난 때문에 한과 탄식이 서린 강이라고 불리우기도 한다. (네이버 지식인 참조 http://kin.naver.com)
4. 동두천시에 있는 미군 2보병사단의 기지중 하나. 동두천 전체 크기의 3분의 1의 면적을 차지한다. (위키피디아 참조 http://ko.wikipedia.org)
5. 동두천시에 위치한 소요산의 한 봉우리. 공주봉에 서면 동두천시의 지형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마치 구글 어쓰로 들여다 본 세계처럼 캠프케이시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6. 캠프님블은 동두천의 기지들 중 미군이 철수하고 그 영토를 대한민국에 반환한 첫 기지이다. 그러나 미군은 이 땅의 소유주로서 공시지가를 적용해 남한정부에 되팔았을 뿐이고 이전비용까지 받아내었다. 2007년 1월 17일 국방부와 환경관리공단은 캠프님블을 처음으로 일반에게 공개하고, 환경 오염도 조사결과를 발표하며 개발을 암시했다. 오염사실이 없다고 주장한 정부의 결과발표에 의구심을 품은 동두천 시민연대는 거세게 항의하며 포크레인으로 땅을 파보았고, 육안으로도 확인가능한 심각한 토질오염 상태를 확인했으며, 국방부와 환경관리 공단의 관계자는 시민연대의 이러한 개입에 난색을 표하며 이 자리에서 약간의 긴장과 몸싸움이 일어났다. 이날, 한국전쟁 이후 미군부대에 자신의 농지를 빼앗긴 한명의 원소유자의 가족들도 이 광경을 보고 있었다.
7. 모리스 블랑쇼/장 뤽 낭시, 밝힐 수 없는 공동체/마주한 공동체, 박준상 옮김, 문학과 지성사, 2005 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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