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802

[이대대학원신문]박성연-웅얼거리는 미친언어들

박성연_웅얼거리는 미친 언어들"><이대 대학원 신문 55호> 박성연_웅얼거리는 미친 언어들

박성연*_ 웅얼거리는 미친 언어들

기이하게도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정상이라는 개념이 존재한다. 단 한번도 그 실체를 드러내 보인 적이 없으면서도 늘 막강한 권위를 동반하며 위용을 뽐내는 정상이라는 개념은 세상을 정상적으로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정상적인 가족을 만들어, 정상적인 질서를 유지하길 원하며, 정상적인 로고스(Logos)의 언어로 또박또박 말함으로써, 정상적인 권위를 생산한다. 그들은 그 권위를 맹신하며, 결코 자신들의 견고한 울타리를 무너뜨리려 들지 않는다. 울타리 밖으로 떠나거나 밀려나는 것에 공포를 느끼므로, 떠나더라도 Home, Sweet Home!을 외치며 원래의 위치로 재빠르게 돌아온다. 이들의 권위에 도전하거나, 혹은, 자꾸만 의문을 가지거나 문제점을 제기해 한낱 평화로운 질서를 교란하는 존재들은 비정상으로 분류되어 멀고 먼 타자들의 땅에 유배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는 늘 억압과 폭력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세상의 많은 존재들은 거의 정상적이지 않다. 우리는 늘 머뭇거리고, 웅얼거리며, 쉽게 마음이 변하고, 부서지기 쉬우며, 수 많은 경계들의 안과 밖을 끊임없이 들락거리는 정의 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로고스의 언어를 아예 이해하지도 못하며, 또 그 일부는 견고한 논리의 언어가 휘두르는 폭력에 저항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실어증에 걸리거나, 미친자들의 언어로 웅얼댄다. 박성연의 미술언어가 서성거리는 곳은 바로 이러한 미친 언어들의 주변, 즉, 아버지의 로고스적 언어를 거절하기 때문에(혹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정상이 아니라고 취급된 여자들, 그래서 미친 언어로 웅얼거릴 수 밖에 없게 되어버린 여자들의 언저리이다.

2004년의 개인전을 통해 보여주었던 <국수 뱉는 여자>는 이러한 박성연의 관심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작가가 실제로 꾸었던 꿈에서 비롯된 이 이미지는 같은 동작을 끊임없이 반복하도록 하는 랜티큘러 판(Lenticular Sheet)*안 에 갇혀 있다. 한 여자가 입을 통해 무언가를 말하려 하지만 여자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것들은 말이 아니라 마치 구토물처럼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국수 가락들일 뿐이다. 따라서 말하고자 하는 여자의 욕망은 국수 가락을 뱉어 내는 것으로 치환되고, 이 반복적이고 지루한, 그러나 곧장 광기로 이어질듯한 고통스럽도록 필사적인 동작의 재현은, 로고스의 언어 저편으로 달아난 저항의 언어, 미친 언어, 그리고 여성의 언어로 말하는 어떤 폭로에 가깝게 느껴진다.

< 국수 뱉는 여자>를 비롯한 <머리 긁는 여자>(2004), <인사하는 여자>(2004)등의 이전 작업들이 보여준 절박함과 치열함에 비한다면 2006년작 <녹아 흘러내리는 웨딩홀, 녹아 흘러내리는 궁전 Melting Wedding Hall, Melting Castle>은 저항언어로서의 미술언어의 가능성을 보다 여유롭고 유머있게 보여주는 단 채널 비디오 작업이다. 이 작업은 약 5분에 가깝게 궁전과 같은 웅장한 건물들이 서서히 녹아서 사라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장엄하고 고상한 클래식의 음률과 함께 등장하는 이 우아한 궁전들은, 실은 한국사회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우스꽝스럽도록 키치화된 웨딩홀의 모습들과, 웹 상에 돌아다니는 서구의 궁전사진들을 함께 뒤섞어 제작된 발굴, 변형된 장소들이다. 아름다운 공주는 멋진 왕자님을 만나 영원히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의 뿌리깊은 서사를 반복 생산해 내는 결혼, 혹은 정상가족이라는 가부장적 이성애주의의 재생산 신화를 지켜내는 장소로서의 예식장은 성연에게 늘 불편하고 낯선, 그리고 억압적인 장소일 뿐이다. 그러나 한껏 여유로워진 작가는 이 정상성의 신화에 대립해 지난한 싸움을 걸지도, 분노를 터뜨리며 예식장들을 부수거나 갈아 엎어내지도 않는다. 그녀는 오히려 아무 말도 알아 듣지 못하는 척,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척 능청을 부리다가, 혹은, 미친 여자처럼 혼잣말을 웅얼대며 세상의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맴돌다가, 마치 얼음이나 설탕을 녹여내듯, 조용하고 은밀하게 이 단단한 구조를 슬쩍 녹여버리는 것이다.

박성연의 작업의 행보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여성주의의 전략이 내/외부적인 투쟁을 거쳐 변모해온 어떤 역사적 성과를 알아 챌 수 있게 된다. 무겁고 우울하며 헐떡대고 격앙되었던 타자들의 분노가 한껏 여유를 부리며 능청스럽게 미친 언어들을 중얼대기 시작한 순간, 웃음과 유머로 상대를 교란하고 조롱하며 낙후시키는 바로 그 순간에, 비로소 한없이 가볍고 행복한 타자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결코 쉽지 않았던 그 경험의 역사를 말이다.


<녹아 흘러내리는 웨딩홀, 녹아 흘러내리는 궁전 Melting Wedding Hall, Melting Castle>

단 채널 비디오, 스틸 이미지, 00:04:33, 2006




* 박성연 197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이화여대 서양화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던 중 영국으로 날아갔다. 최근, 런던 예술대학 첼시 컬리지 (Chelsea Colledge of Art and Design, University of Arts London) 에서 Fine Art 석사과정을 시작했다. (작가 박성연의 홈페이지는 http://www.parksungyeon.com 이다.)

* LENTICULAR SHEET는 투명한 플라스틱제이고 하나 하나의 단위가 반원형을 하고 있는 미세한 렌즈의 집합으로, 아래 부분은 평평하게, 표면은 파형(波形)을 한 렌즈이다. 이 렌즈를 통해서 교착된 이미지를 보게 되면 실제로는 평면이며, 정적인 이미지상이 입체, 동영상, 혹은 다른 효과들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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