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802

[이대대학원신문] 송상희-비체들의 귀환

송상희_비체들의 귀환"><이대 대학원 신문 54호> 송상희_비체들의 귀환


송상희_ 비체들의 귀환 (이대대학원신문54호)

자 신의 발언에 절대적인 권력을 부여하지 않으려는 끊임없는 자기 검열과 예민한 성찰, 타자들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려는 부단한 노력과 윤리적 실천, 폭력적인 근대화의 망령에 사로잡힌 남근적 주체를 해체하는 비체들의 조롱, 그리고 그 사이에 작가 송상희가 있다. 송상희는 최근 몇 년간에 걸쳐, 앤더슨이 명명한 상상적 공동체로 범주화된 국가민족이라는 지나치게 혈기 넘치는 남근적 기획 저편으로 밀려난 여성들의 웅얼거림에 주목해 왔다. 마치 현실과 연옥의 경계에서 우글거리는 귀신과 유령처럼 불편하게만 존재하는 비체적 존재들을 불러들이는 일은 그녀의 가장 최근작에서도 역시 발견된다.

< 달맞이 꽃>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이 작업의 텍스트는 현직 성 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여성들에게 받은 자작시 들로 이루어져 있다. 작가는 현재 자신이 머물고 있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몇몇 성 노동자들을 만나 이 작업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기획을 개진해 나갔다. 현재 성매매가 합법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암스테르담의 PIC(Prostitution Information Centre) 의 지지와 도움을 받아, 전 세계의 성 노동자 네트워킹(International Committee on the Rights of Sex Workers in Europe (ICRSW), International Union of Sex Workers (IUSW), The Network of Sex Worker Projects (NSWP))과 접촉 할 수 있었고, 이 기관들의 메일링 시스템을 통해 총 아홉 편의 시를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암스테르담의 집창촌인 Red Light District 한가운데에 자리한 교회 담장에 가로등을 설치하고 그 빛을 이용해 빛 글자로 만들어진 아홉 편의 시를 이 거리의 바닥에 투사했다. 이 작품이 보여지자 거리는 빛으로 인해 환히 밝혀졌고, 그것을 불편이 여긴 한 성 노동자 여성의 부탁으로 인해- 마치 해가 지기 시작하면 아름답게 피어나 새벽녘에 시들어 버리는 달맞이꽃처럼- 이 프로젝트는 새벽이 다가올 때쯤 끝을 내게 되었다. 이렇듯이 이 작업은 작가의 기획으로 시작되었지만 거의 모든 공간이 성 노동자 여성들의 목소리로 촘촘히 채워져 있다. 이것은 마치 스피박의 하위주체는 말할 수 있는가?라는 다소 회의 짙은 질문에 대한 긍정의 응답처럼 들린다. 재현(representation)하되 대표(representative)하지 않는 태도, 즉, 재현과 대표의 공모관계에 저항하는 송상희의 재현의 윤리가 이 작업의 근간이 되어, 하위주체스스로 자신들의 독자적인 언어를 만들어 말하게된 것이다.

그녀의 전작들에서는 이러한 상황이 보다 직접적으로 작가의 수행적인 육체를 통해 드러난다. 작가 스스로 동두천 윤락가의 한복판에 서있는 눈과 입을 검은 테이프로 가린 한 여성으로 분하여 전복적인 시선과 언어를 만들어 내거나 (동두천, 2005), 전 대통령 영부인 육영수와 영원한 모성의 판타지 신사임당 등을 연기하며 역사적으로 구성되어 강요된 여성성의 난데없는 부활극을 펼쳐내어 우스꽝스럽게 비틀어내기도 한다(국 립극장, 2004/영부인A, 2004/신사임당, 2004). 또는, 몸 보정기와 고문기계의 경계쯤에 위치할만한 고안된 장치들을 제작하여 가부장적 이데올로기 안에서 고통스럽게 훈육 당하는 여성의 신체를 폭로하는가 하면 (착한 딸이 되기 위한 몸짓, 2001),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치장된 근대적 허상 속에서 자신의 한 팔을 절단 당한 채 유원지의 난간에 기대어 환하게 웃고 있는 버스 안내원의 모습을 불러들이는 데 (푸른 희망, 2002)에 까지 이르면 우리는 작가 송상희가 자신을 예술가로 동일시하는 일이 이 무수한 비체적 존재들에 자신을 동일시하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눈치 채게 된다. 이렇게 구성된 송상희라는 작가의 정체성이, 그녀 스스로 쉬지 않고 그래왔던 것처럼, 그녀의 작업들과 마주한 우리에게 스스로를 부단히 성찰해 낼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바로 그 제안이, 견고한 역사로 재현되지 않았으므로 잊혀지거나 사라질뻔한, 무수한 비체적 존재들을 불러모은다. 모든 억압된 것들은 반드시 귀환한다던 프로이트의 예고가 실현되는 이 특별한 재현의 공간으로.

*작가 송상희 197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이화여대 미술대학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주로 서울지역을 중심으로 활발한 작품활동을 해왔으나, 지금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라익스 아카데미 (Rijksakademie van beeldende kunsten)의 예술가 거주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작가 송상희의 홈 페이지 http://dalgrian.com/)

*<달맞이 꽃, 2006>은 현재 광주 비엔날레에서 관람 할 수 있다. (광주 비엔날레 공식 홈페이지 http://www.gb.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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