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현주[i]_ 타자들의 이웃
‘미술적’인 행위들이 우리의 비루한 삶에 끼어들거나 관계 맺을 수 있는 가능성은 어디까지 일까? 미술, 혹은 예술은 우리의 삶을 어떻게 변화 시킬 수 있을까? 그리고 그 행위의 주관자인 미술가/예술가는 어디에 자신을 위치 지어야 하는 것일까? 최근 한국 미술계를 점령하다시피 한 ‘공공미술’, 혹은 ‘미술의 공공성’에 관한 수많은 논의와 담론들은 이러한 질문에 응답하려는 부단한 노력으로 보인다. 그러나 종종 잘못 이해된 ‘손쉬운’ 전략들이 난무하기도 하는 최근의 공공미술 프로젝트들은 특정한 지역을 선택해 소위 ‘문화적 소외 지역’이라는 일방적인 호명을 일삼고, 장소에 대한 이해나 맥락이 제거된 조악한 조형물 설치와 벽화 그리기 등의 ‘환경미화/정화’ 에 급급하기도 한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공공미술은 어떻게 예술과 삶이 관계하며 소통할 것인가의 문제를 부단히 성찰하기 때문에 여전히 유효한 예술적 매개자이기도 하다.
이러한 공공미술에 대한 논의들 사이에서 우리는 작가 도현주를 만날 수 있다. 그녀는 한 사람의 미술가 일뿐만 아니라, 공공 미술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기획자이자 프로젝트 매니저이기도 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그녀가 진행하는 작업이 기반하는 특정한 커뮤니티들의 ‘이웃’으로 존재하면서 공공미술이 정말로 문제 삼아야 할 것들을 고민한다. 도현주의 작업이 진행되는 장소는 주로 한국사회의 곳곳에 존재하는 과도한 근대적 욕망의 잉여로 남아있는 기이한 디아스포라적 공간들이다. 그 곳은 수 차례에 걸쳐 기억을 봉인 당하면서 결코 역사에 기입되지 않는 타자들의 (비)장소로 남겨진 곳들이다. 도현주는 그러한 지역의 특성을 사회정치적인 맥락에서 차근차근 읽어내고 연구하면서 ‘과정’이며 ‘태도’로서의 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해 나간다.
그 중에서도, 마석의 가구단지에서 이주노동자로서 일하며 거주하는 네팔인 커뮤니티와 함께 진행한 <마석 이야기>(2006-2007)[ii]는 도현주의 예술적인 관심을 잘 드러내주면서 ‘공공미술’의 한 패러다임을 제안한 의미 있는 기획으로 꼽을 수 있다. 마석은 1960년경에는 한센인들의 주거가 이루어졌고, 1990년경부터는 국내 최대의 가구단지가 조성되었지만, 현재에는 이 지역의 30퍼센트 이상이 아파트단지 조성의 명목으로 개발 중에 있다. 가구공장의 3D노동력을 메우고 있는 네팔인 이주노동자들이 이 지역 안에서 일종의 집성촌을 이루어 살아가고 있음에도, 이 지역의 개발 전망 내에서 이들 네팔인 커뮤니티에 대한 고려를 발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도현주는 그녀의 몇몇 동료들과 팀을 이루어 이 마석지역의 네팔인 커뮤니티와 접촉하였고, 그녀는 그 중에서도 “여성”들의 그룹에 주목한다. 비 장소화된 공간의 타자화된 사람들, 그리고 그 내부에서도 침묵하거나 주변으로 물러나 있는 여성이주민들과 이웃하기 위해 도현주가 시도한 것은 그녀들과 모여 앉아 뜨개질을 하며 수다를 떠는 <손바닥 워크숍>이었다. 축구경기 한번으로도 끈끈한 공동체를 만들어내는 남성들과는 달리, 여성들을 모이게 하고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를 고민한 결과였다.
그러나 작가는 점차 집단적이고 내재적이며 전체주의적인 ‘공동체’가 이 “여성”들에게 과연 필요한 것인지를 의문하게 된다. 작가는 프로젝트 진행일지를 통해 하루하루를 기록하지만, 실은 그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나날이 벌어진 사건과 사고들이라기 보다는 이 여성들과 이루어가는 공동체와 소통에 대한 거듭되는 재정의일 것이다. 작가는 여성 이주민들의 서툰 한국어를 더 집중해 듣게 되면서, 그녀들의 정신적인 불안이 몸의 병으로 기어나올 때,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그곳으로 접속해 들어가면서 비로서 어떤 공동의 경험을 나누고, 공공의 시간을 얻게 된다. 모리스 블랑쇼가 전했던 “밝힐 수 없는 공동체”, 즉 공동체를 가지지 못한 이들의 “공동체 없는 공동체”를 생성해 내는 순간이다. 타인과 이웃함으로써 생겨난 보이지 않는 공유의 공간이야말로 도현주가 얻어낸 ‘공공성’의 비밀일지도 모른다.
2005년부터 2006년까지 약 1년여에 걸쳐 진행된 <부동산 프로젝트>[iii]에서 작가는 “단원인장구(但願人長久: 다만 그대가 오래도록 살아)[iv] 라는 간판이 걸린 폐허가 된 작은 공간을 발견하고 경험했었다. 이 프로젝트의 반쪽 부분이었던 가리봉지역 역시 경제성장의 편집증적인 욕망이 불러들였던 수많은 공장 노동자들의 삶의 기억들이 미끄러지며 사라진 곳, 이후엔 전지구적 자본의 이동을 따라 몰려든 조선족 이주노동자들의 집성촌이 되었으며, 이제는 뉴타운 정책의 바람에 힘입은 개발이라는 이름 하에 그들의 기억은 축적되지도 기입되지도 않은 채 잊혀질 것이 분명한 장소였다. 도현주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도 역시 그들의 기억을 나누어 갖는 타자들의 이웃으로 존재하고자 한다. 타인을 느끼며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이러한 그녀의 ‘이웃하기’의 태도는 세상의 모든 사라져가는 존재들을 향해 오늘도 조용히 이렇게 속삭이기 위함이다. “다만 그대가 오래도록 살아… (但願人長久)”
[i]작가 도현주는 1973년에 서울에서 태어났다. 계원조형예술학교 조형과를 졸업했고 경원대학교 환경조각과에 재학중 독일로 건너가 베를린예술대학을 졸업했다. 미술 프로젝트의 작가와 기획자를 넘나드는 통합적인 예술가의 정체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주로 서울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중이다. 현재, 2007년에 새롭게 시작한 프로젝트인 <정릉지역 공부방 프로젝트>에 매진 중이다.
[ii]<마석이야기>의 진행 블로그는 http://artincity.org/maseok/ 이다.
[iii]<부동산프로젝트>의 관련정보는 http://club.cyworld.com/danol 과 http://club.cyworld.com/toari 에서 볼 수 있다.
<마석이야기_손바닥워크숍> 2006-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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