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802

[이대대학원신문]박소연-타인의 고통에 연대하기

박소연_타인의 고통에 연대하기"><이대 대학원신문 57호> 박소연_타인의 고통에 연대하기

소연[i]_ 타인의 고통에 연대하기


우리는 종종 타인의 고통을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것, , 나에게 체험된 역사 저편에 있으므로 그것에 대해 말하는 주체가 되는 것은 불가능 하거나 도덕적일 수 없다는 식으로 그 고통에 접속하지 않는 자신들을 정당화 하곤 한다. 최근에 일어난 아프간 봉사단의 탈레반 억류 사건과 그에 대한 사람들의 냉랭한 반응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이다지도 연민 없는 시대를 살아 왔던 것인지를 확인하며 섬뜩해 지곤 했다. 오로지 고통의 비극성과 선정성만이 나와 (관계없는)그들 사이를 메울 뿐, 역사와 사건은 타인들과의 어떠한 관계성도 상실한 채 건조한 사실로서만 역사 교과서에 기입 되어 버리고 만다. ‘사실을 담보하는 고통의 증언과 기입된 역사의 언저리를 촘촘히 메꿔내야 할 연민과 슬픔, 그리고 그 고통 속에서 죽어간 자들에 대한 애도는 어디에 있는가? 타인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나의 감각으로 모여들곤 하는 그들의 통증, 그에 응답하는 나의 고통은 대체 어디에 있는가? 이토록 연민 없는 시대에, 고통 받는 몸들의 연대는 가능한가?



박소연
의 작업은 이야기를 듣고 말하는, ‘대화라는 가장 일상적이고 기본적인 과정을 통해 타인의 고통에 연대하는 제식(ritual)을 시도한다. 작가는 프로젝트의 참가자들이 자연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타인의 이야기를 듣게 만드는 편안한 분위기와 장치들을 만들어 제공하고, 대화의 물고를 터주게 할 뿐, 참가자들의 이야기와 행위를 통제하거나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등의 연출은 하지 않는다. 2005년부터 시작되어 지속되고 있는 <이야기하기와 듣기 시리즈 Storytelling and Listening Series>[ii]는 작가 박소연이 사회 속에 존재하는 한 사람의 예술가로서, 혹은 1세계에 정착한 아시아인 여성 예술가로서, 세계의 문제에 개입하려는 하나의 미술적 양식으로 고안되었다. 박소연은 타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비로서 그들과의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것은 작가가 이주를 통해 경험했던 거듭되는 인종적/젠더적/문화적/언어적 장벽/장애/장해/경계로부터 시작된 소통불가능의 고통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한 작가는 미국에서 체류하는 동안 아버지의 부음과 9.11참사, 쓰나미 참사를 연달아 마주하면서, 이렇게 맞닥뜨린 슬픔에 접속하지 않은 채 어떻게 예술을 할 수 있을까를 치열히 고민했다고 고백한다. 박소연은 이러한 고통과 슬픔에 언제나 직면할 수 밖에 없는 사회적 소외집단에 주목하게 되고, 작가 개인의 예술적 감성과, 훈련되고 단련된 미적 양식으로 채워졌던 자신의 지난 예술적 행보 또한 크게 수정하기로 결심한다. <이야기하기와 듣기 시리즈>는 이러한 성찰의 과정을 통해 탄생된 프로젝트라고도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올해 초부터 약 5개월여에 걸쳐 진행되었던 이 시리즈의 두 번째 시도인 : Tapping into Urban Youth>는 이러한 작가의 태도가 가장 빛을 발한 프로젝트라 볼 수 있다. 이 프로젝트는 현재 작가가 거주하고 있는 미국 캔자스 시의 홈리스 청소년들과 진행해 나갔다. 5개월간의 워크숍을 청소년들과 함께 만들어 가면서, 미술 놀이 등을 통해 이들의 그림과 이야기들을 인내심 있게 이끌어내고 듣고 나누는 작업을 거친 후, 모아진 드로잉들은 직경 4M가량의 거대한 둥근 이불 위에 색색으로 수 놓여 졌다. 워크숍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날, 어둡고 고요한 홀 한가운데에 이불과 비슷한 크기의 푹신하고 둥근 매트리스가 설치 되었으며 그 위에 이 이불이 깔리고, 참가한 아이들은 매트위로 뛰어들어 이불 속과 밖을 뒹굴며 자신이 그린 드로잉을 찾아내면서 행복한 함성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마치 한판의 축제를 벌이듯 시작된 이 기획은 이내 아이들 스스로 담담하게 구술하는 고통의 서사들로 메워지고 그에 응하는 이야기들이 여기저기에서 터져나오면서, 경험을 나누고 고통을 연대하는 눈물과 함성과 웃음으로 뒤범벅된 두 시간여의 퍼포먼스로 마무리 되었다. 이 퍼포먼스는 고통 받는 이들에 대한 애도와 동시에 고통으로부터 생존한 자들을 축복하는 강력한 치유의 제식과도 같아 보인다. 이 제식을 통해 참가자들은 치유 받는 자인 동시에 스스로 타인을 치유하는 이가 되어 자신들의 경험을 나누어 갖게 되며, 희생자 담론이나 작가주의 전략에 저항하면서, 매우 이상적인 소통의 예술적 실천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수잔 손택은 자신의 저서 <타인의 고통>에서, 전쟁과 같은 비극적 역사의 현장에서 터져나올 수 밖에 없는 타인의 고통을 스펙타클한 이미지로만 소비하는 것을 통렬히 비난하고, 이들의 고통에 연대할 것을 강력히 주장한다. 박소연의 작업은 자칫 미술작업의 미덕이라 오해되기 쉬운 스펙타클한 이미지와 사건들의 배열로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그녀가 만들어내는 예술의 구조와 물질들은 작가의 표현을 빌자면 “Empowering Objects”, , 관람자에게 힘을 부여하는 장치로서의 미술이다. 이러한 미술의 형태는 우리에게 잔혹한 현실에 직면하고 생존할 수 있게 하는 내면의 강인한 힘을 모아내는 동시에, 그 잔혹함에 동요하고 진심으로 애도하게 하는 어떤 동의의 과정을 유발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예술가로서의 박소연은 손택이 강조했던 타인의 고통에 연대하기를 가능하게 하는 예술적 실천의 윤리, 혹은 정치적인 개인들과 그 연대를 우리들 삶의 구석구석으로 불러 모은다.

: Tapping into Urban Youth>, 프로젝트 진행 광경, 2007



[i]박 소연 1972년 부산에서 출생, 서울에서 성장했다. 서울여대 공예과를 졸업하고 도미하여 캘리포니아 예술대학(California Collage of Arts)에서 도예와 조소를 공부했고, 오하이오 주립대학교(The Ohio State University)에서 퍼포먼스, 설치, 뉴미디어로 석사과정을 이수했다. 2004년부터 지금까지 (신정아 파문으로 유명세를 탄) 미국 캔자스대 (The University of Kansas) 미대의 Expanded Media과 조교수 로 재직중이다.

[ii]이 시리즈의 세번째인 <어머니와 딸의 장소전 Storytelling and Listening Series Ⅲ: The Site of Mothers and Daughters> 8 23일부터 서울 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유클리드의 산책>전의 오프닝 퍼포먼스로 진행된 후 한 달간 전시된다. (서울 시립 미술관 홈페이지 http://seoulmoa.seoul.go.kr)

이 시리즈의 네번째인 (여인들의 안방전 Storytelling and Listening Series IIII: The Inner room of Women) 9 1일 여성플라자의 큐빗 갤러리와 9 5일 창동 국립 미술창작스튜디오 창동 갤러리에서 라이브 퍼포먼스로 진행될 예정이다. (국립 미술창작스튜디오 홈페이지http://www.artstudio.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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